줄리엣 비노쉬, 니체의 영원 회귀, 말로야 스네이크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는 줄리엣 비노쉬와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인연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감독은 줄리엣 비노쉬가 20살 때 주연을 맡은 영화에서 만나 통찰력 있는 배우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만났을 때 세월과 경험을 아우르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줄리엣 비노쉬에 말에 영감을 받아 시나리오 구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은 니체가 쓴 '영원 회귀'에 대한 글을 읽고 영화의 배경을 실스 마리아로 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니체는 실스 마리아에서 요양하던 중에 실스 호수를 보며 황홀한 느낌을 받았는데 며칠이 지나 동일한 그곳에서 똑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영원 회귀'는 간단히 설명할 순 없지만 모든 순간과 만물은 무한하여 반드시 되풀이하여 돌아오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맥락과 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감독은 영화 속에도 등장하는 '말로야의 구름 현상'이라는 100년 전에 만든 짧은 다큐 영상에서도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 영상에는 영화 속 연극 제목인 '말로야 스네이크' 현상이 담겨 있는데 오래된 영상이지만 깊은 산맥 사이를 서서히 흘러 유기적인 느낌으로 연결되어 있는 구름의 모습이 모든 시간을 서서히 담아서 머금고 있는 듯 신비롭고 경이로운 느낌을 줍니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 Clouds of Sils Maria, 2014
개봉 / 2014.12.18
장르 / 드라마
국가 / 프랑스, 스위스, 독일
등급 / 15세이상관람가
러닝타임 / 124분
감독 / 올리비에 아사야스 Olivier Assayas
출연 / 줄리엣 비노쉬 Juliette Binoche (마리아 엔더스) 크리스틴 스튜어트 Kristen Stewart (발렌틴)
클로이 모레츠 Chloe Moretz (조앤 엘리스)
시간과 삶의 순환과 공존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의 주인공 마리아는 18살 때 연극 '말로야 스네이크'에서 직장 상사 헬레나를 유혹해서 이득을 취하고 결국 자살하게 만드는 시그리드 역을 맡았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40대가 된 지금 리메이크 작에서 자신을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어준 젊고 매력적인 시그리드 역이 아닌 유혹에 넘어가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는 나이 든 상사 헬레나 역을 제안받게 됩니다.
마리아는 영원히 젊고 매력적인 주인공 '시그리드'로 남고 싶다며 그 제안을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말로야 스네이크'의 헬레나를 놓지 못하고 결국엔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공연 전까지 마리아랑 매니저인 발렌틴이 연극 대본이 집필된 장소인 실스 마리아에서 대본 연습을 하는 과정에서의 고뇌와 충돌의 과정을 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대본 연습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시그리드를 놓지 못하고 헬레나의 나약함을 견딜 수 없어하며 그 과정에서 발렌틴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는 장면들도 나옵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기 전에는 그런 혼동의 감정을 겪으며 마리아가 더욱 성숙해져 비로소 시그리드, 헬레나를 모두 아우르게 된 배우로 변해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배우를 통해 보게 되는 시간의 영속성
이 영화에는 3명의 여배우가 나오는데 마리아 역할의 줄리엣 비노쉬와 현재 할리우드 대세 배우들이라고 하는 크리스틴 스튜어트랑 클로이 모레츠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영화가 얘기되는 곳에서는 배우들에 대한 코멘트가 유난히 많습니다. 특히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줄리엣 비노쉬라는 대배우 앞에서도 자연스럽고 느낌 있는 연기를 보여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나이가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영화를 보는 내내 줄리엣 비노쉬의 젊은 시절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오버랩되었습니다. 젊은 시절 줄리엣 비노쉬가 나오는 영화들이 문득문득 생각나고 그때의 세상에서 제일 예뻤던 비주얼과 당시의 그걸 느꼈던 나, 그리고 현재의 나까지 뒤섞여 감상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나도 이 정도인데 당사자인 줄리엣 비노쉬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를 촬영하면서 얼마나 많은 뒤섞인 감정들을 경험했을까 싶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영화 안에서의 마리아가 현실에서의 줄리엣 비노쉬가 되고 또 내가 되는 현실을 자연스럽게 오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화 안에서 마리아도 실제 줄리엣 비노쉬도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모두 아우르며 더 발전된 자신을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보여 희망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인생을 직선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나를 다 염두에 두고 설계해보면 좀 더 나은 방향을 얻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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