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OVIES

「파니 핑크」슬픔과 고독 안에 있는 따뜻함

 

 

파니핑크
영화 「파니핑크」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

 

영화 「파니 핑크」는 공항에서 소지품 검색 직원으로 일하는 29살 파니 핑크가 자기 자신과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빼어난 영상과 감미로운 음악이 떠오르는 감각적인 영화이지만 사실 우울하고 고독한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파니는 사랑에 실패한 경험들로 인해 자기 자신을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을 거라는 불안을 안고 본인 역시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파니는 안정적인 직업, 자신의 집, 차를 다 가지고 있고 외모도 아름답지만 이미 바닥이 난 주변과 자신에 대한 신뢰는 쉽게 회복될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모임에 참석해 관을 짜서 만들어 방안에 두고 불안할 때는 그 안에 들어가 있기도 하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매일 밤 나는 강하다, 나는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란 말을 주문처럼 외워보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이미 잃어버린 자신감과 사랑에 대한 믿음은 회복되기 어려워 보입니다. 그렇게 예민하고 불안하고 무미건조한 생활을 하던 파니는 운명처럼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서 새로운 삶의 태도를 배울 수 있게 됩니다.

 

파니의 진정한 친구 오르페오

 

어느 날 파니는 엘리베이터에서 오르페오라는 점성술사로 보이는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파니에게 힘이 되는 조언을 하며 진정한 멘토가 되어 줍니다. 파니가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있도록 주옥같은 명언들을 해주고 생일에는 해골 옷을 입고 케이크를 준비해서 축하를 해주는데 이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Non, Je Ne Regrette Rien'는 영화보다 더 유명합니다.

 

하지만 오르페오는 파니만큼이나 사랑에 상처를 받은 사람으로 병까지 얻어서 굉장히 절망적인 상황을 견디는 중이었는데 영화 중간에 옥상에 올라가서 눈물을 가득 머금은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굉장히 아픕니다. 비록 오르페오는 마음도 몸도 병든 상태로 파니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받으며 함께 하다가 결국 떠나가지만 그런 따뜻한 친구가 있었다는 기억만으로도 힘이 될 만큼 위안이 되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둘은 파니가 사랑하는 사람을 얻기 위해 오르페오의 점성술로 여러 가지 시도들을 하는데요 그중에는 숫자 23에 대한 예언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완전히 빗나간 예측으로 결국에는 더 큰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오르페오가 떠난 후 선물처럼 커다란 23을 가진 누군가가 등장하며 파니는 앞으로는 외로울 것 같지 않아 보이고 방안에 있던 관도 창문 밖으로 던져 버립니다. 사실 파니의 남은 인생이 조금 더 희망적으로 보이는 것은 누군가의 존재 때문이 아닌 자기 자신을 스스로 먼저 믿고 사랑하게 되었다는 변화 때문일 것입니다.

 

 

파니 핑크 / Nobody Loves Me, Keiner liebt mich, 1994
개봉 / 1995.10.21
러닝타임 / 104분
감독 / 도리스 되리 Doris Dorrie
주연 / 마리아 슈라더 Maria Schrader (파니 핑크), 피에르 자누시 블리스 Pierre Sanoussi-Bliss (오르페오)

 

지독한 고독과 슬픔 위에 있는 희망

 

이 영화는 보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왠지 희망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게 단순히 활기찬 희망은 아니고 지독한 고독과 자기 연민을 견뎌낸 후에 만들어진 것이라 더 와닿았습니다. 그리고 본인은 비록 실제로 굉장히 외로운 가운데 죽음을 향해 가고 있지만 파니에게 늘 최선의 조언을 해주려고 노력했던 오르페오가 있었기에 마음은 아프지만 결국에는 파니도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파니 핑크」는 독일 영화로 개봉한 지 벌써 25년이 지났지만 지금 봐도 주인공의 마음을 따라가서 응원하게 되고 오르페오에게 함께 위로를 받으며 영화가 끝날 때는 따뜻한 무언가가 마음속에 남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어렸을 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화려하고 감각적인 이미지와 색감, 한번 들으면 계속 맴돌 수밖에 없던 중독적인 음악이 가장 와닿았고 우스꽝 스러운 파니나 오르페오의 모습들이 각인되어 유쾌한 코미디 영화로 기억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파니의 예민함과 불안함이 보이고 오르페오의 처절한 슬픔도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둘의 진정한 우정이 무엇보다 부러웠는데 현재의 나 자신을 돌이켜 봤을 때 그렇게 진심을 담아 인생에 대한 진지한 얘기를 아무 거리낌 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가 있나 하는 의문이 어쩔 수 없이 들어서 였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오르페오가 파니에게 말한 것처럼 나 자신이 먼저 나서서 타인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주려는 노력에서부터 그런 관계는 시작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받으려고만 하는 사람은 결국 관계에서 항상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지만 먼저 다가가고 주려고 애쓴다면 자신도 타인도 함께 만족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이상하게 오르페오의 처절한 고독과 슬픈 눈빛만 떠오릅니다. 결국 혼자서만 이겨내야 하는 고독도 있는 것이고 그래야 하는 상황도 있는 것인데 그걸 견뎌내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강해져서 누군가의 고통에 버팀목이 될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