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를 죽여줘는 캐나다 연극 킬 미 나우를 원작으로 한다. 이 연극을 본 최익환 감독이 감명을 받고 영화로까지 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화에 대한 감독의 인터뷰에서 작품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느껴졌다.
영화 나를 죽여줘에는 중증 지체 장애를 가진 아들 현재와 그를 홀로 돌보는 아버지 민석이 등장한다. 주인공들의 그러한 상황은 자연스럽게 현실의 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 물론 장애의 종류와 상황들이 각기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영화 하나가 장애인의 현실을 대변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감독의 말대로 어떤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보면 좀 더 이야기가 와닿을 수 있다.
나를 죽여줘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것을 생각하게 된다. 고 3인 현재가 성에 눈을 뜨자 민석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고민을 한다. 자신의 아들이 또 한 가지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이 생겼다는 것에 대해 슬픔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독립을 꿈꾸는 현재와 그를 보호하는 마음이 강한 민석은 갈등을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장애인의 성 문제와 독립 문제에 생각을 뺏기자마자 다른 아픔이 다가온다. 바로 민석이 우연히 겪은 사고로 병원에 방문했다가 심각한 병을 발견한 것이다. 그 병은 너무 오랫동안 진전되어 치료법도 없었다. 근육이나 움직임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병을 발견한 지 얼마 있지 않아서 민석은 현재보다 더 큰 장애를 갖게 된다.
그리고 민석의 그 고통은 아들보다 더 오래 살고 싶었던 꿈까지 접게 만든다. 바로 이때부터 관객들은 존엄사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된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죽기를 원하는 아빠를 온전히 이해하는 현재는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아빠의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인정하는 모습에서 비장애인보다 성숙한 인격을 보게 되었다.
영화 나를 죽여줘에는 정신장애를 갖고 있는 장애인 활동지원사 기철과 민석의 여동생 하영도 등장한다. 기철은 현재와는 다르게 건강한 신체를 갖고 있지만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역시 영화가 진행될수록 주변에서 보기 드물게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인물로 느껴졌다.
민석의 여동생 하영 또한 오빠와 조카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는 역할로 등장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민석의 여자 친구인 수원도 등장한다. 이들 세명은 현실성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민석과 현재의 아픔에 기꺼이 동참한다. 요즘처럼 보통의 삶 만으로도 버거운 세상에서 자신이 짐작할 수 없는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삶에 끼어든다는 것은 대단한 일인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러 오는 많은 관객들이 주인공들의 고통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가까이 있다면 그 고통의 시간을 함께 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의문은 나라면 어떻게 할까 하는 나의 물음으로 시작되었다.
일단 나는 민석의 마음에 가장 감정이입이 되었다. 아들의 일 외에는 아무것도 상상할 수 없게 된 전직 소설가가 글쓰기 강의를 하면서 하루하루 버티는 삶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고통을 끝내기 위해 죽음을 택하고 싶지만 남은 아들에게 보험금을 남기기 위해 고민하는 모습에서 끝까지 중증 장애 아들을 키우는 아빠의 모습만 보였다.
특히 마지막 순간이 오기 전에 기철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되어 주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듣고도 아들 현재를 부탁하는 말로 화답할 수밖에 없는 그는 죽어서도 아들 걱정을 할 것만 같았다. 살면서도 아픈 자식 걱정에 제대로 살지 못했는데 죽는 순간까지도 온전히 자신일 수 없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나름대로 아픔이 있다. 그런데 영화에서처럼 극한 상황의 고통이 닥치면 난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 두려웠다. 지금까지의 크고 작은 고통들이 나를 성장시켰다기보다는 그 반대였던 것 같다. 그나마 있었던 장점들은 다 사라지고 나의 어두운 측면들만 점점 드러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부터라도 고통에 매몰되지만 말고 그 안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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