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한 상황에 빠진 대상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나 소설을 볼 때면 가끔 죄책감이 든다. 특히 그것이 실제 하는 인물을 계속 떠올리게 할 때 그런 것 같다. 로기완도 소설이지만 어딘가 그것보다 더한 상황에 빠진 누군가를 계속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일부러 찾아보지 않아도 가끔 매체를 통해 탈북민들의 생활에 대해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현실은 소설보다 더 끔찍한 것을 알기에 글을 읽으면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도 미안해질 때가 많다. 그래서 소설 속 김작가가 하는 행동들이 곱지 않게 보였다. 물론 잘못한 것도 없고 오히려 죄책감에 시달리는 착한 사람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사실은 나 포함 대부분의 사람들이 김작가의 포지션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김작가를 비난할 자격은 없지만 로기완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사실은 자기 위로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연민이란 감정을 진짜 싫어하긴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진짜 이 소설의 작가인 조해진 작가의 말을 보니 그런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항상 실화 혹은 실존 인물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서 작가나 감독은 어떤 마음일까 생각했었다. 그들을 들여다보도록 도와주면서 누군가에게 미안해할까 궁금했었다. 그런데 작가의 말을 보니 자신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준 지인들과 우연히 보았던 다큐멘터리 속 사연의 주인공에게 빚진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위로의 언어로 기억되기 위해 쓰이는 이야기도 있다는 것을 믿고 싶다고도 했다.
어쩌면 나야말로 연민이란 감정에 대한 알 수 없는 거부감에 사로잡혀서 많은 것을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안 됐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 미안하고 괴로워서 아무것도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나에게 박(박윤철)이 때로는 미안한 마음만으로도 한 생애는 잘 마무리된다고 한 말이 조금 위로가 되었다.
등장인물 (스포가 될 수 있음)
윤주 - 소설 초반은 주인공이 윤주에 대해 미안해하는 이유가 뭘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게 했다. 주인공은 아픈 환자들의 사연을 방송해서 후원금을 모으는 프로그램 작가이다. 윤주는 주인공이 특별히 애착을 갖던 출연자로 오른쪽 얼굴에 큰 혹이 있었다. 윤주는 자신의 혹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놀라서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자신의 아픔으로 인해 타인에게 혐오의 눈빛을 받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로기완 - 주인공이 윤주의 일과 함께 처음부터 언급했던 인물이다. 처음에는 이니셜 L로 시작했던 인물. 그리고 L이 인터뷰 때 했던 말이 주인공을 벨기에까지 이끌었다고 했는데 그 말은 소설 후반부에 박에 의해 드러난다. 반전 소설은 아니기에 큰 한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말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소설을 읽었다.
어머니는 저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살아야 했습니다.
소설 속 주된 내용 중 하나는 로기완이 어머니의 목숨값으로 받은 돈을 방수포에 싸서 브뤼셀에 머무는 동안의 이야기이다. 그것을 로기완의 일기를 통해 보면서 주인공은 그가 머물거나 스쳐갔던 곳을 찾아다닌다. 맥도널드 화장실에 앉아서 빵을 먹던 로의 행동을 따라 하려던 주인공이 실패하고 구토를 했던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로는 한국 대사관에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거기서도 별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을 동시에 안고 지냈다. 그런데 역시나 한국 대사관은 그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사관 직원들은 연민조차 품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기에 로에게 탈북민이라는 증거만을 요구한다. 희망을 품으면서도 그 기대를 저버릴 현실을 예감했고 그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
박(박윤철) - 로기완이 벨기에 정부로부터 난민 지위를 받는 것을 적극적으로 도운 사람이다. 그럼에도 로는 박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난민 지위까지 포기한 채 영국으로 떠났다. 그 미안함과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해 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로는 박에게 자신의 일기를 전해줬다.
박은 김작가에게 로의 일기와 자술서 사본을 전해 주었고 영국에 있는 로기완을 만나게 해 준다. 박은 자신의 아내에 대한 죄책감을 김작가를 만나면서 조금 위로받는 것 같았다. 물론 죽기 전까지 아내에 대한 미안함을 갖고 살겠지만.. 그런데 박이 김작가를 통해 위로받는 장면은 그렇게 까지 해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위로가 필요한 인물들 뿐이다. 그런데 정작 진짜 힘든 현실에 처해 있는 윤주와 로기완보다 김작가와 박이 더 위로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좀 씁쓸했다. 정작 특별한 고통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통이 너무 특별해서 말하기조차 힘든 것은 아닐까.. 믿기 힘든 고통을 사람들은 믿어줄까..
김작가 - 주인공 화자이다. 소설에서 이름이 언급되었었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후회하는 있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있지만 자신이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는 건지 알 수 없어 괴로워지곤 한다고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결국 후회도 자기 위로의 일종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연민도 후회도 없는 사람과 글이 훨씬 더 끔찍할 것이다.
로기완을 만났다
저자 : 조해진
출판 : (주)창비
초판1쇄 발행 : 2011년 4월 30일
개정판 1쇄 발행 : 2024년 2월 16일
페이지수 : 244(개정판) 200(초판)
수상내역 : 신동엽 문학상 수상, KBS 선정 '우리 시대의 소설 50'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 마당이 있는 집 리뷰 - 평범하게 불행한 삶 (0) | 2023.06.15 |
---|---|
행복배틀 책 리뷰 - 불행한 자들의 SNS 파티 (0) | 2023.06.08 |
나이키 여름 옷 추천 - 기본 반팔티 AR4999 (0) | 2023.05.31 |
나이키 에어포스 1 로우 CW2288-111 (0) | 2023.04.22 |
JMW 터치온 드라이기 사용 후기 (1) | 2022.11.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