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함께 하더라도 다시 만나자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밸런타인데이 날 잠에서 깬 조엘이 출근을 하다 말고 갑자기 몬톡행 열차를 타고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잔잔한 음악과 함께 나오는 짐 캐리의 슬픈 톤의 내레이션이 한참 이어지는데요. 아직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왠지 씁쓸하고 서글픈 느낌이 드는 장면들입니다. 그리고 조엘은 도착한 바닷가에서 오렌지 색 후드를 입은 파란 머리의 여자를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둘 다 혼자이고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계속 동선이 겹쳐서 마주치다가 돌아오는 열차에서 결국 그녀가 먼저 조엘에게 말을 겁니다. 그녀의 이름은 클레멘타인이라고 하는데 왠지 서로에게 강한 끌림을 느끼고 단숨에 친해집니다. 파란색 머리를 한 클레멘타인은 자신이 머리 색깔을 자주 바꾼다고 하며 이름을 가지고 놀리지 말라고 말하지만 조엘은 유명한 노래 제목인 클레멘타인이란 단어 자체를 처음 듣는다고 합니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만난 지 하루 만에 급격하게 친밀감을 느끼며 연인 사이로까지 발전을 하려는 찰나, 그녀의 집 앞에서 어떤 남자가 조엘에게 여긴 어쩐 일이냐고 묻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그는 기억을 지우는 회사 라쿠나사의 직원 패트릭입니다. 「이터널 선샤인」은 약간은 독특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서 처음에는 이 남자의 행동이 그냥 의아했지만 영화를 두 번째 보게 되면 이 장면을 포함한 다른 몇몇 장면들이 비로소 그 의미 하나하나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울면서 운전을 하고 있는 조엘이 보이고 그가 친구들에게 클레멘타인이 자신의 기억을 다 지웠다며 하소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조엘은 클레멘타인이 헤어진 후 바로 둘의 기억을 삭제했다는 것을 알고 화가 나서 자신도 라쿠나사를 통해 그녀와의 기억을 삭제하기로 합니다. 기억 삭제는 그의 집에 라쿠나사의 직원들이 방문해서 머리에 동그란 헬멧 같은 기기를 씌우고 꿈을 꾸듯 진행이 되는데요. 가장 최근의 기억부터 삭제가 되기 시작합니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최근 기억은 안 좋은 기억들인데요. 둘이 다투고 다투다가 헤어지게 되었으니 당연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기억이 삭제되어 가는 중에 행복한 기억들도 만나게 되는 조엘은 꿈속과 같은 기억 삭제 공간에서 제발 기억 삭제를 취소해 달라고 외치지만 라쿠나의 직원들에게는 그 외침이 들리지 않습니다. 라쿠나의 직원들 중에는 클레멘타인의 호감을 사기 위해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이용하는 패트릭이 있는데요. 조엘은 기억 삭제 중에서도 그가 클레멘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소리를 듣고 더더욱 그녀와의 기억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기억삭제라니 왠지 미래 의학 얘기 같아서 최첨단 시설 등이 나올 것 같은데요. 영화 속에는 최첨단 도구처럼 보이는 낯선 기구들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미셸 공드리 감독이 관객들의 시선이 그런 미래 지향적 시설들에 뺏기지 않고 영화의 스토리에 집중해주길 바래서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터널 선샤인」은 특수 효과도 눈에 띄게 사용하진 않았는데요. 조엘이 클레멘타인과의 기억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어린 시절로 함께 도망가는 장면에서는 가구들을 특수 제작하여 상대적으로 조엘이 작아 보이게 하는 아날로그적 방식을 사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 안에는 조엘과 클레멘타인 말고도 라쿠나의 직원인 메리의 사랑에 대해서도 나오는데요. 그녀는 라쿠나의 원장 하워드에게 갑자기 고백을 하고 그에게 키스를 합니다. 그리고 곧 그 장면을 목격한 그의 부인으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습니다. 결국 메리도 조엘과 클레멘타인도 기억을 삭제했음에도 그 감정은 자신도 모르는 곳에 남아 있어 다시 또 그 사랑을 선택하게 되는데요. 누군가와 사랑한 후 이별의 과정이 힘들어서 기억삭제까지 했지만 결국엔 또 그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 자신을 마주한 그들은 혼란스러워합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보기 전에 독특한 설정이 어떻게 펼쳐질지도 궁금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짐 캐리와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가 궁금했는데요. 둘 다 이 영화 전이랑은 전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한다고 하기에 더욱 호기심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부터는 어색함은 전혀 없이 둘 다 원래 그런 역할을 했던 배우들처럼 너무 자연스러워서 몰입이 되었는데요. 짐 캐리는 목소리랑 눈빛이 굉장히 서정적이라는 것에 새삼 놀랐고 케이트 윈슬렛은 고전적인 느낌의 미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작품을 통해서 개성 있고 매력적인 역할도 잘 소화해낼 수 있는 배우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사랑을 통해서 행복만이 아닌 상처를 느끼고 힘들어할 것을 알면서도 또 그 과정을 반복하겠다는 아님 그럴 수밖에 없는 두 남녀의 결정이 특별해 보이진 않았는데요. 사랑했던 사람과의 추억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라면 동반되는 고통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본다면 현재 지긋지긋한 관계 속에서도 특별히 소중했던 추억들을 떠올려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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