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성과 대중성까지 모두 갖춘 수작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작품성과 대중성까지 모두 갖춘 작품으로서 그의 뛰어난 미적 감각과 연출력이 돋보이는 수작입니다. 2014년 베를린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이 영화는 은곰상까지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분장상, 미술상, 의상상, 음악상을 수상하며 뛰어난 영상미도 입증되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작가주의 영화에서는 보기 드물게 우리나라에서 제작국가인 미국, 독일과 비슷한 시기인 2014년 3월 20일 개봉하여 큰 흥행을 이루고 2018년 10월 11일 재개봉까지 하였으며 총 누적 관객은 80만이 넘었습니다. 평론가들의 극찬과 함께 대중들에게도 영화의 재미와 감동을 인정받은 셈인데요. 총 러닝타임 100분 동안 지루함이라고는 전혀 없이 매혹적인 화면과 스토리로 관객들을 압도하는 영화입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세계 최고의 재력가이자 호텔 지배인인 구스타프의 연인인 마담 D. 의 살인사건으로 인해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펼쳐지는 영화로 화려한 출연진들로도 화제가 되었습니다. 구스타브 역의 랄프 파인즈, 80대의 마담 D.로 분장한 틸다 스윈튼을 비롯하여 에드워드 노튼, 애드리언 브로디, 윌렘 대포, 주드 로 등 할리우드 대표 배우들의 활약이 돋보입니다.
액자식 구성과 함께 각 시대를 구분 짓기 위한 화면 비율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현재, 1985년, 1968년, 1932년의 총 4가지 각기 다른 시대가 등장합니다. 작가를 추모하는 소녀가 나오는 현재에서 늙은 작가가 나오는 1985년, 젊은 작가가 늙은 제로를 만나는 1968년, 젊은 제로와 구스타브가 나오는 영화의 중심 시대인 1932년입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이 각기 다른 시대와 시대를 구분 짓는 장치로 화면 비율의 차별성을 두는 것을 선택했는데요. 그 화면 비율의 구분을 위해 애너모픽 렌즈를 사용해서 영상을 압축 촬영한 뒤에 좌우를 늘리는 방식으로 영상 비율을 다르게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화에는 총 3가지의 화면 비율이 나옵니다.
먼저 1932년 시대에는 유성영화가 막 나오기 시작하는 시절로 1906년 국제 표준 화면 비율로 공인된 아카데미 비율에 가까운 1.37:1의 비례로 당시 TV 화면처럼 정사각형에 가까운 프레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1968년 시대에는 시네마스코프(1950년대 TV 보급으로 인해 위기에 닥친 할리우드가 영화 산업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고안한 화면 비율로 가로의 비율이 굉장히 큽니다.) 비율을 적용하여 2.35:1로 가로가 유난히 긴 화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늙은 작가가 등장하는 1985년과 소녀가 나오는 현재는 비스타비전(1954년 미국 파라마운트 영화사에 의해 개발된 시스템으로 고해상도의 와이드 스크린 형태)의 1.85 : 1의 비율을 사용하고 있는데 스크린의 대형화를 반영해서인지 비율은 같지만 현재 시점이 화면 크기가 좀 더 크게 나옵니다.
화려한 영상미 뒤에 숨은 제국주의와 전쟁의 폐해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시작은 한 소녀가 공동묘지에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란 책을 쓴 한 작가를 추모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시점은 1985년으로 바뀌어 늙은 작가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들려주겠다고 합니다.
다시 또 시대는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젊은 작가의 모습이 나오는데 그때의 부다 페스트 호텔은 과거의 명성을 잃어 이미 쇠퇴한 후의 모습입니다. 그곳에서 주드 로가 연기한 젊은 작가는 호텔의 주인인 제로 무스타파를 만나고 그에게서 전성기 때의 부다페스트 호텔의 지배인인 무슈 구스타브와 함께 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이제 영화의 중심은 물질 만능 주의로 인간성을 상실한 제국주의 시대이면서도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 사이인 193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32년의 부다페스트 호텔은 화려한 색감으로 관객들에게 영화 자체를 넘어 아름다운 미술작품을 감상하듯 미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면도 있는데요. 실제로 영화를 보는 내내 매력적인 영상에 매혹되어 자막을 놓치는 때도 종종 있었습니다.
1932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최고 지배인인 무슈 구스타브는 19년 동안 매해 찾아오는 자신의 연인인 84세의 마담 D. 를 그녀의 집으로 떠나보냅니다. 그녀는 다른 때와는 달리 심하게 두려워하며 이번에 헤어지게 되면 두 번 다시 못 만날 것 같다고 함께 할 것을 부탁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긴 구스타브는 그녀만 홀로 돌려보내게 됩니다.
바로 그날 젊은 시절의 제로는 수습 로비 보이로 구스타브와 첫 대면을 하게 되고 둘의 인연이 시작되는데요. 어느 날 신문을 가지러 간 제로는 전쟁 발발이란 기사 아래 마담 D. 의 사망 소식을 보고 놀라 바로 구스타브에게 전하고 둘은 그때부터 위험한 여정을 함께 하게 됩니다.
구스타브는 제로와 함께 그의 연인이었던 마담 D. 의 집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군인들을 만나게 되는데요. 군인들은 제로가 무국적 이민자라는 이유로 잡아가려 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막으려는 구스타브와 대치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다행히도 구스타브와 인연이 있는 헨켈스 경위가 나타나 곤경에서 구해 주며 그들에게 특별 여행 허가서를 발급해 줍니다.
위기를 넘겨 마담 D. 의 집에 도착한 구스타브와 제로는 변호사 코박스가 그녀의 유언을 낭독하는 현장에 함께 하게 됩니다. 마담 D. 는 연인인 구스타브에게 값비싼 명화를 유산으로 남기는데요. '사과를 든 소년'이란 제목의 그림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아들 드미트리는 결사반대하며 구스타브를 고소하겠다고 협박합니다. 결국 구스타브와 제로는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그림을 몰래 가져와 호텔에 숨겨놓지만 구스타브는 마담 D. 를 독살한 범인으로 지목되며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감옥에서의 구스타브는 호텔에서처럼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풀면서 친목을 다지는데요. 그러면서 동료 죄수들과 탈옥까지 해서 성공하게 됩니다. 한편 드미트리와 그가 고용한 킬러 조플링은 유산을 모두 다 가로챌 목적으로 마담 D. 의 변호사 코박스, 비밀을 알고 있는 집사 서지 X 등을 무자비하게 살해하는데 그 과정에서 잔인한 장면들이 여과 없이 노출되지만 곧 아름다운 영상에 묻히고 맙니다.
구스타브는 누명을 벗기 위한 희망이었던 서지 X를 킬러 조플링이 살해 후 스키를 타고 도망치자 제로와 함께 썰매를 타고 뒤쫓는데요. 결국 제로가 절벽에서 밀어 조플링이 떨어져 죽는 것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이 흥미진진한 썰매 장면은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미니어처 세트 등을 활용해서 창의적으로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호텔 외관은 정교하게 만든 미니어처 세트를 활용했는데 완성도 높고 아름다운 배경과 장면을 만드는데 일조를 하였습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살인 혐의에서 벗어나게 되고 마담 D. 의 재산까지 물려받게 된 구스타브는 제로와 그의 아내 아가사와 함께 몰락한 주브로브카 공화국을 떠나 기차를 타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영화 전반부와 똑같이 군인들이 등장하여 무국적자인 제로를 잡아가려고 하는데요. 구스타브는 전처럼 강하게 반격을 하는데 이때의 군인들은 전혀 타협의 틈이 없어 보이고 결국 그는 총을 맞아 죽게 됩니다.
여기서 두 번째 등장하는 군인들은 2차 세계 대전과 함께 나타난 나치의 군인을 상징한다고 하는데요. 영화가 끝나면 슈테판 츠바이크에게 영감을 받았다는 문구가 나오는데 그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를 피해 망명생활을 하다가 지쳐서 자살을 하게 된 뛰어난 재능과 감성을 가진 비운의 작가입니다. 그러한 그에게 영향을 받아 만든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화려한 영상과 익살스러운 표현, 흥미진진한 스토리 뒤에 전쟁과 제국주의의 이기심, 나치의 무자비함 등을 상징하는 요소들을 두고 있습니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시작하면서부터 보는 내내 예쁜 배경과 매혹적인 색감, 가상인 것이 분명하지만 정이 가는 주인공들에게 빠져 들게 하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화려한 영상 속에 물질 만능 주의의 허무함, 최소한의 인간성까지 상실한 전쟁과 나치, 인종 차별등을 나타내는 요소들은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끝없는 재물 욕심으로 자신의 엄마까지 살해하는 드미트리와 대조되는 구스타브는 허영심이 있는 주인공이지만 약자인 제로를 보호하는 등의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끝까지 잃지 않는 존재로서 화려한 영상미와 함께 심오한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하는 이 작품과 일치되는 인물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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